아빠 환갑도 모르는 무심한 딸.
연일 계속되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폭동 뉴스에 또다시 나는 뉴욕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의 대상이 되었다. 평상시 관심받는 것을 그다지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를 걱정해서 연락을 주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뉴욕에 지내는 거의 4년의 시간 동안 뉴욕으로 여행을 두 차례나 왔던 친한 동생에게서 온 보이스톡을 받지 못해 연락을 해봤더니 아니나다를까 미국 시위와 폭동 뉴스를 보고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사는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플러싱에는 아직 폭동 피해는 없었음을 알리고 캐나다에 있는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는 7월부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 편이 있어 그 시기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이야기와
호주에 있는 동생은 입출국이 전부 금지되어 출국 신청을 했는데도 거절을 당했고 한국으로 갈 방법이 아예 없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뉴욕과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의 상황에만 항상 촉을
세우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즈음 친구는 내게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자가 격리가 끝나는 바로 다음 날에 아빠 환갑이라서 다행히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환갑. 그렇다. 나도 언젠가부터 우리 부모님의 환갑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어 지난 항상 젊다고만 느꼈던 부모님이기에
환갑을 마치 늘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생각했다.
언젠가 환갑은 만으로 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친구 아버님의 출생 연도를 물었고 친구는 1960년생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빠도 1960년생이고 올여름이 생신이신데 나는 내가 현재 뉴욕에서 겪고 있는 상황과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아빠 환갑은커녕 생신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했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카톡 문자를
이어가는 친구의 스피드에 맞춰 답을 하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고 친구와 서로의 무사귀환을 격려해주며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카톡을 마쳤다.
카톡창을 닫고 캘린더 어플을 열어 음력으로 6월 25일이 생신인 아빠의 올해 양력 생신이 언제인지를 확인해
'아빠 생신 환갑'이라는 단어를 그제야 스케쥴러에 적어놓았다. 자가격리 기준은 일반적으로 14일로 알려져 있지만
검색을 통해 실제 해외 입국자들의 사례를 알아보니 검사 후 음성반응이 나온 사람의 경우 입국한 날짜부터 17일째가
되는 날에서야 바깥 활동이 허락된다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날짜를 계산해 보니 원래 미국에서 출국을 하려던 날짜보다 이삼일만 앞당겨도 아빠 생신 다다음날까지는
바깥 활동이 가능해지겠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렇게 비행 날짜를 바로 수정하게 되었다. 그저 한국에 가기 전까지
추슬러야 하는 내 마음과 정리해야 하는 짐들 그리고 필요한 서류들에만 집중하는 사이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만일 오늘 친구가 연락을 주지 않았더라면 아빠 환갑에 맞춰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한국에 돌아갈 때 까지도 올해 아빠 생신이 환갑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 나는 정말 무심한 딸이었구나. 가끔 통화라도 할 때면 아빠에게 잔소리나 하고 필요한 물건 보내달라고 부탁이나
할 줄 알지 참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아빠 환갑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런 딸이었구나.'
뉴욕의 코비드 19 상황에 지치기도 했고 시위와 폭동으로 통행금지까지 생긴 미국 생활에 다소 염증이 생기긴 했지만
사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바로
내 가족이었다. 힘들었던 뉴욕 생활을 가족들에게 위로받고 싶었고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같이 하기 위해서 결국 힘든 결정을 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또 내가 먼저였고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아빠는 내가 올해 아빠 생신이 환갑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고 나는 뭔가를 준비하고 싶어 졌다.
바로 셀프 환갑잔치.
추석 연휴를 이용해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강아지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예쁜 펜션을 예약하고 현수막과 케이크를 주문하고 풍선과 초로 이벤트 준비를 하고 나와는 달리 성실히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과 함께 100만 원의 현찰을 준비해서 파티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동안 아빠 눈에서 감동의 눈물 뽑아내기!
검색을 해보니 요즘 환갑은 예전처럼 뷔페에서 거하게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가족들과 홈파티를 즐기거나 멋진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정도로 간소화된 듯했다.
하긴 예전에야 평균 수명이 워낙에 짧아 60만 넘어도 엄청 장수한 것으로 여겨 환갑잔치를 했다지만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60은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도 민망할 정도로 다들 젋어지셨으니 환갑 문화 또한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환갑'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아빠의 환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고 가족들끼리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예순 번째 생신 파티를 준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올해 2020년이 바로 아빠의 출생 연도인 1960년생 쥐띠의 환갑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심한 딸이지만 그래도 아빠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항상 전화하면 "그냥 했어"라는 아빠의 말에 할 말도 없으면서 왜 전화했냐며 떽떽거리는 못된 딸이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한다고,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행복한 추억들을 같이 만들기 위해 돌아가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빠, 사랑해요. 아주 많이.
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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