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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서 알게 된 것들

뉴욕살이 5년차. 팁을 내는 문화에 살면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가 바뀐다.

뉴욕 살이 5년 차. 팁을 내는 문화에 살면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가 바뀐다.

 

계산서

한국에 살면서 일때문에 짧게 해외에 갈 때도 종종 있었고 장기 출장으로 3개월씩 해외에서 머물게 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해외에서 아예 거주하게 된 것은 뉴욕이 처음이었다.

장기 출장에 익숙해진 나였기에 해외에서 사는 것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내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또 확연히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훔쳐갈 수도 있으니 식당이나 커피숍 테이블에 자연스레 휴대전화를 올려놓을 수 없게 되었고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에 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만 원 상당의 지폐를 들고 물건을 사러 갈 때도 누가 그 2만 원 때문에 나를 때리고 돈을 훔쳐갈 수도 있으니 돈을 지갑에 먼저 넣고 나가라는 사장님의 신신당부를 들어야 했고 손에 전화기를 쥐고 다니던 한국에서의 습관도 점점 위험한 행동이라는 생각에 주의하게 되었다.

 

사실 이 모든것은 한국에서 사람들이 유럽 여행 시 주의해야 할 사항 정도로 알려져 있지 싶다. 하지만 유럽보다 조금

나을 뿐 미국 그것도 뉴욕의 치안도 그보다 훨씬 안전하다고는 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막차 시간에 지하철 타기 일쑤였던  내 삶은 어느새 해가 지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철칙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또 맨해튼의 한인타운 식당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한국인 유학생의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는 혼자서는 조금 외진 식당 화장실가기도 무서운 정도가 되어버렸다.

 

여행을 할 당시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막상 이 곳에 살면서 보니 어마어마한 문화 차이로 다가왔다.

뉴욕을 여행할 당시 나는 여행자였고 돈을 쓸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팁 문화가 사실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보통 뉴욕 맨해튼처럼 땅값이 비싼 번화가에 위치한 식당 엣 밥을 먹을 때는 음식값의 20%를 서비스 팁으로 내곤 한다.

예를 들어 음식값이 10만 원이 나왔다면 2만 원은 음식값과 별개로 카드 영수증에 적어서 팁을 추가로 카드결제를

하거나 또는 현찰로 2만 원을 두고 가는 것이 문화이다.

 

카드로 계산한다면 서명하는란위에 서비스 팁을 얼마를 낼지 적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손님이 거기에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적어 넣으면 가게 측은 마감 시 이 금액을 카드 기계에 입력해서 손님의 카드 내역에는 음식값과 서비스 팁이 함께 빠져나가게 된다. 또 한국에서는 서버라 불리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들의 경우 팁을 받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급은 법정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 책정되어 있어서 이들에게 팁을 받는 것은

무조건적인 일이다.

 

이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았다면 팁을 주고 그렇지 않았다면 주지 않는 차원이

아니다. 친절한 대우를 받았다면 서비스 팁을 음식값의  20% 이상으로 많이 내는 것이고 그냥 무난했다면 음식값의 15% 정도의 적정 금액의 팁을 내는 것이다.

 

이들이 받는 주급에는 사실상 음식을 주문받고 추천해주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에 대한 돈이 포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봐도 무방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화가에 위치한 곳의 레스토랑이나 손톱관리나

페디큐어 미용실, 페이셜이나 마사지처럼 사람의 손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 최소 20% 정도의 팁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행을 할 때는 단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팁이 약간은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어도 그래도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지'라는 생각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뉴욕에 살면서부터였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뿐 아니라 배달 음식에도 딜리버리 맨에게 팁을 내야 한다는 것은 여행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여행자는 딜리버리를 시킬 일이 거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혼자였던 나는 외식문화보다는 배달이 더 익숙했고 배달음식 또한 시키는 양에 비례해 팁을 내야 한다는 것이 어느새

차츰 부담스럽기 시작해 어느새 배달을 시키지 않고 음식을 직접 가지러 가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의 경우 본인이 직접 가지러 가더라도 음식을 포장해주고 자기 손에 쥐어준 그들의 서비스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팁을 주고 가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점차 이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어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전보다 팁을 더 넉넉하게 주게 되었고 그런 것을 아깝지 않다고 느낄 뿐 아니라 어떤 날에는 더 드리지 못 해 죄송하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눈이나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짜장면이나 차이니즈 푸드를 배달시킬 때면 팁을 얼마를 내도 부족하게 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비스 팁을 강제적으로라도 내다보니 어느샌가 정말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게 된

것이었다.

 

계산서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계산서를 받아 들고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계산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음식값의 20%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팁을 적기도 하고 음식값에 붙은 세금에서 두 배를 계산해 팁을 내기도 한다.

 

나는 식당에서 캐셔 알바를 하며 웨이트리스들이 카드로 팁을 받으면 당일에 팁을 가져가지 못할 뿐 아니라 카드

수수료로 인해 현금으로 받는 팁보다는 조금 빠지는 금액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팁을 카드로 내지 않게 되었다.

 

 

계산서

한국에서는 뉴욕보다 훨씬 더 무더운 날에도 택배를 배달해주시고 음식을 가져다주시는  분들께 한 번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던 적이 없었다. 그들의 직업을 하찮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돈이라는 게 참 웃긴다 싶다. 돈을 지불하다 보니 오히려 그 돈이 갖는 가치만큼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서비스 팁이라는 걸 내다본 보니 그분들께 더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

 

물론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 이렇게 직접 팁 문화를 경험해 보지 않더라도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배달을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직접 다른 문화를 체험해 봄으로써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서비스 팁을 낸다는 것'

'서비스에 대해 감사함을 갖는다는 것'

만약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절대 미국에서 생긴습관 중 바꾸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사람들 눈과 입에 휘둘리지 않는 것. 불필요한 물건들까지 욕심내는 것. 그리고 내가 받는 서비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는 것.

 

비록 미국에 사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딱히 이루어낸 것이 없다고 해도 나는 알맹이가 달라졌고 

진짜 나를 알게 되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