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부터 늘 '언젠가' '요가'를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운동 자체를 미룬 건 아니었지만 선택은 늘 요가가 아닌 다른 운동이었다.
단기간에 살을 뺄 수 있는 피트니스 등록 방송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골프 연습실 정작 내가 배우고 싶었던 운동은 요가였지만 나는 늘 요가원보다는 단기간에 이득을 볼 수 있는 다른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나는 더이상 단기간에 살을 빼야 할 필요도 없고 운동도 스펙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기에
정말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올해 1월 그루폰을 통해 한 달 내내 무제한으로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쿠폰을 39.20달러
(한화 약 40000원)를 들여 구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요가를 배우게 되었다.
첫 요가 수업을 며칠 앞둔 12월의 어느 날. '불현듯 요가 수업 때 뭔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가원에 전화를 걸어 요가매트 등 준비사항에 대해 문의했다. 매트가 있으면 들고 와도 되고 없으면
1달러를 내고 요가원에서 대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의 전화를 끊고 나서도 왠지 뭔가를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그게 뭔지 알아챌 수 없었다.
그리고 요가 수업 첫날. 구글 지도를 검색해 요가원을 향해 한 시간을 걸었다. 버스를 타면 2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2.75달러 (약 3000원 정도)의 버스비도 아끼고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영어 듣기 공부도 할 겸 몇십 블럭을 걸어 요가원에 도착했다.
나름 번화가에 위치한 요가원이었지만 입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요가원은 꽤 오래돼 보였다. 한국 가게들이 나름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반가운 한국어로 '요가'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보였고 출입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로
요가원도 나를 반겨주었다.
계단을 올라서자 복도를 따라 정돈된 듯 또 정돈되지 않은 듯 한 신발들이 보였다. 나는 눈치껏 빈 곳에 신발을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매한 그루폰의 바코드를 선생님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내게 페이퍼를 한 장 주고 적으라고 했다.
정신없이 적다 보니 어느 곳엔 이름을 영어로 적고 또 다른 곳엔 이름을 한국어로 적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당황한 나는 하나는 한국어 이름이라고 말하며 한국어 이름은 발음이 어려우니 영어 이름인 'Joy'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살짝 당황한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는지 그녀는 여기 오너도 한국인이고 자신은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웃으며 접수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수련원 안으로 향했다.
낯선 요가원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왠지 초보자인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괜히 편안한 척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미국인이었는데 구석에 한국 여성 두 명도 있었다. 그때까지 그녀들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쫙 빼 입은 요가복에 깔끔한 페디큐어 예쁘게 말아 올린 업스타일 헤어 그리고 인스타 업로드용 셀피 촬영을 하는
모습까지 나는 그녀들이 한국인이라고 장담했고 요가 수업이 끝난 후 그녀들이 한국어로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부터 내가 요가 수업에 가져가야 하는데 자꾸만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 그 무언가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였다면 아마 요가원에 등록하기도 전에 스타일리쉬한 요가복을 먼저 구매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요가 수업 첫날 전엔 반드시 페디큐어를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가는 그곳에 살을 빼고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내 머릿속 어딘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여름용 반팔 티셔츠에 집에 굴러다니는 레깅스 차림이었다. 몸은 한국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숫자의 체중을 돌파했고 화장은커녕 눈썹도 그리지 않은 얼굴과 손목엔 명품 시계 대신 운동량과 수면 질을 측정해주는 FITBIT이 둘러져있었다.
한국에선 50kg만 넘어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질책하며 의사에게 우울증이 있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 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던 내가 60kg이 넘는 내 몸을 그냥 이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다이어트의 수단이 아닌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서 알게 된 것은 내가 입고 있는 옷이나 내 체중계가 가리키고 있는 숫자는 나를 규정할 수 없으며
내 행복도는 결코 그런 것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옷 치수가 55인지 66인지 보다는
내 몸이 건강한지, 한 시간을 넘게 반려견과 산책을 해도 지치지 않는 몸상태인지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 인생에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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