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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서 알게 된 것들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아시나요? 나를 부끄럽게 한 영화 이스케이프 하우스!!!

 

 

미국에 오기 전 나는 사실 히스패닉계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멕시코와 에콰도르, 칠레, 쿠바와 같은 나라들을 들어는 봤지만 그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내가 뉴욕에 살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스패니쉬'라는 단어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3D업종에 종사하거나, 불법으로 이 곳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지에서는 주로 '친구'라는 뜻의 '아미고'로 불리고 있었지만 '친구'라는 단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뜻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뜻하고 있었다.

 

나에게 그들은 매우 다른 어떤 의미였다. 매일 아침 길거리에 떼로 몰려 서서 그곳을 지나가는 나를 위아래로 훑고

어떤 때는 본인들의 언어로 내게 이상한 추파를 던지는 또 그것이 나에게는 우리가 주로 쓰는 말 중 하나인

'성희롱'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느낌을 주는 그런 존재들.

매일 아침은 거리에 앉아 휘파람을 불거나 스페인어로 나를 부르기도 하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또 그들에게 희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그들을 노려보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주로 키가 아주 작고 뚱뚱한 체형에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힙사이즈를 갖고 있는 그녀들은 아이를 서너 명씩 데리고 다니며 그다지 청결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때로 나는 이들과 함께 일을 했고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가끔은 시간이 맞으면 그들을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는 내가 선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싶어 베푸는 그런 종류의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나와 문화 차이를 갖고 있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그들'에 대한 나의 눈빛은 여전히 아니 나날이 차갑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케이프 하우스라는 영화 속 '그들'과 마주하며 처음으로 '그들'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거리에 서서 그날 그날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그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자신들의 집으로 유인해서 싸이코 행각을

벌이는 백인 부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으로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어서였을까. 영화가

매우 훌륭해서였을까. 어쨋든 나는 이 영화에 엄청나게 매료된 채 그렇게 두시간이 순삭인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미국 땅에 들어와야만 했던 '그들' 가족들을 위해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그들'을  나는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원이 불분명한 '그들'이 미국 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취임과 동시에 '그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장벽을 세웠던 도널드 트럼프가 틀렸는지 옳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내 눈빛이 틀렸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매일 아침 '그들'이 왜 길거리에 서있는지 나는 몰랐었다. 당연히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들'에 대한 별다른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 길에 서서 이미 약속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그 날 하루 자신들에게 일을 줄 누군가가 있을지를 간절히 찾고 있었던 것임을 나는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린다'와 '일을 줄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나에게 상당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얼마나 불확실성의 최고봉에 있는 일인가! 누군가 나에게 일을 줄지도 모르고 오늘 일을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순간 처음 뉴욕에 살면서 베이커리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미국에서 20년 가까이를 거주한 매니저언니에게 '그들'은

쳐다보면 더 가까이 다가올테니 아예 눈길도 주지 말라던 말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매일 아침 대로변 그들을 바라보던

내 시선들까지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또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그들은 왜 거기에 서있는지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 곳에

와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대체 왜 그들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야만 했을까.

 

평소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아니 나는 그보다도 저질이었다. 그들을 향한 내 눈빛은 어떤 멍청한 말보다도

더 어리석었다. 4년동안이나 모르고 있던 그들에 대해 2시간짜리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영화가 다 끝날 즈음 히스패닉계 사람들 그리고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나는 그냥 지금까지의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바라봤던 내 시선과 그들을 향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 그리고 그들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내 모습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