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뉴욕 여행을 할 때 당시 내 영어 회화 수준은 딱 물건을 살 수 있고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 여행을 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을 하지 않고 돌아갈 순 없기에 어떤 뮤지컬을 봐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뮤지컬 티켓과 하찮은 내 영어 실력까지 뮤지컬을 보지 말아야 할 이유들도
충분해보였지만 뉴욕까지 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한 편 보고 가지 않는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나는 결국
여행이 끝나기 며칠 전이 되어서야 뮤지컬을 보러 향하게 되었다.
뉴욕까지 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지 않고 돌아왔다면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볼거리가 너무나도 많고
또 이 금액이면 우드버리 아울렛에서 신발을 한 켤레라도 신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 공연 문화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위키드.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등 보고 싶은 뮤지컬은 차고 넘쳤지만 내 리스닝 수준을 감안하면티켓값이 아깝지 않게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을즐길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도 많이 보는 <라이온 킹>을 선택했다. 위키드나 오페라의 유령같은 경우는 내한 공연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라이온 킹의 내한 공연 소식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기왕이면 뉴욕 여행을 언제 또 와볼지도 모르는데 한국에서 볼 수 없고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을 보자라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많이 보는 만큼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는알아듣기 쉬운 영어가 많겠지'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오고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뮤지컬이기도 하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공연장을 향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옆에 네다섯 살짜리 꼬마가 알아듣고 재밌다며 깔깔 웃는 대목에서조차 나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와 딸이 중국어로 재밌냐며 묻는 대화가 내 귀에는 더 잘 들렸고 곧 나는 영어를 알아듣고 뮤지컬을 즐기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냥 대화도 알아듣는 것이 버거운 영어 실력인데 거기에 뮤지컬 멜로디까지
더해졌으니 만약 대사가 잘 들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어린 시절 만화로 본 적이 있으니 보다 보면 줄거리가 대충 생각나겠지' 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큰 맥락의 줄거리 외에 다른 내용들은 어렴풋 이조차 기억나질 않았다. 이쯤되자 보고 듣고 즐기는 공연이 아닌 그냥 보는 공연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며 귀가 호강했고 영어를 알아듣고 그렇지 못하고를 떠나서 공연 자체를 즐긴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선택이었다.
'뭐 꼭 다 알아들어야만 공연을 즐기는건 아니잖아! 좋은 음악이고 좋은 무대를 볼 수 있으면 됐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다 보니 어느새 공연은 1부를 끝으로 인터미션시간에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니 2부는 순신간에 끝이 났다.
만약 나처럼 영어가 편하지 않은 실력의 관광객이 뉴욕 여행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으로 <라이온 킹>을
선택한다면 나는 뮤지컬 관람 전에 반드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보고 뮤지컬을 관람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줄거리를 상세히 알고 있다면 영어에 조금 서툴더라도 공연을 즐기기에 더 수월할 것이다.
그래야 남들이 모두 웃는 대목에서 나도 최소 몇 번이라도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느낀 점이다. 남들이 웃을 때
같이 웃을 수 없다는 것은 항상 느끼지만 참 커다란 소외감이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약간 다운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기념품샵의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은 이런 내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완전 취저. 어떻게 이렇게 귀여움 가득한 기념품들을 잘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정말
사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순간들이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 공연장 내 기념품샵에 사고 싶은 기념품들이 한가득이라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진들을 찍으며 꼭 필요한 물건들만 좀 추려보기로 했다.
관광객들도 많은 곳이어서 모두들 사진을 잘 찍어주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하는 경우에도 부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민망함만 감수할 수 있다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얼마든지 남길 수 있었다. 뉴욕으로 여행을 온 상태에서 재밌는 공연을
보고 난후라 모두들 신이 나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주는 것에 더 관대해진 탓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기분좋게
사진을 찍어주고 천연덕스럽게 취하는 내 포즈를 칭찬해주기도 하며 그렇게 공연 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절제한 후 꼭 사고 싶은 물건들을 정리해서 기념품 쇼핑을 마쳤다. <라이온 킹> 에코백 하나 텀블러 하나
비치타월 하나 그리고 이어폰은 동생것까지 해서 두 개!
얼마 전 영화로 나온 <라이온 킹>을 보면서 뉴욕으로 처음 여행 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던 그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땐 정말 10퍼센트도 채 못 알아들었었는데... '뉴욕 살면서도 영어가 참 안는다'라고 느꼈었는데 예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늘긴 느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하나씩 배워간다. 영어처럼 시간의 힘이 필요한 것들. 조바심 내지 말고 묵묵히 걸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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