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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한국이 싫어서>한국을 떠나본 후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소설의 주인공 계나. 20대 후반의 그녀는 종합금융회사 카드 승인실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현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을 거쳐 역삼역까지 가기를 반복.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굴러가는 수레 속 작은

톱니바퀴같았던 그녀의 회사 생활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죠.

 

워킹 홀리대이로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외국병에 걸렸다고 비아냥대며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그녀를 말리는 친구들,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군대까지 기다리며 6년간 연애를 이어온 남자 친구, 재개발이 시작되어 그녀가

모아둔 돈을 조금만 빌리면 24평으로 집을 옮길 수 있다며 호주행 연기를 원하는 부모님까지. 그녀의 결정을 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독감에 걸린 채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던 그녀는 택시는 고사하고 그날도 역시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만 했죠. 겨우 돌아온 집에선 동생과 함께 쓰는 방이 그리고 그곳을 컴퓨터 게임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하죠. "도대체 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해?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이런 일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었어. 나는 울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어. 아빠, 미안해요. 그냥 18평에서 사시면 안 돼요? 난 여기서 도저히 더는 못 살겠어요.

 

그렇게 그녀는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얻은 직장도, 대학시절 CC부터 군대까지 기다리며 관계를 이어온

남자 친구도, 24평으로의 이사를 위해 그녀가 호주행 결정을 유보하길 원시는 부모님까지도  모두 뒤로한 채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 최저임금이나 노동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영어 실력도 유창하지 않은  유학 초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저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국수 가게에서 주방 보조일을 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그녀는 유학 생활 중 만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위기들을 견뎌내며 랭귀지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대학원에 입학해 

회계학 공부까지 마칩니다. 그리고 호주 시민권자가 된 그녀에게 여태 그녀를 기다렸던 남자 친구 지명은 자신이 기자로 취업을 했으니 자신과 함께 한국서 살다가 나중에 호주에 가서 같이 지내자며 프러포즈를 하죠.

 

두 달 동안 지명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며 계나는 생각에 잠깁니다.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퇴근해 씻지도 못 한 채 잠이 들어 그다음 날 새벽이면 또다시 출근 준비를 하는 지명의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이 날 것 만 같았죠. 그리고 이내 이런 지명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슬퍼지고 마는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다시 호주행을 택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혹자는 서울에 4년제 대학을 나와서 금융회사에 취업하고 기자 시험에 합격한 강남 소재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도 있고 부모님이 건재하신 20대 여자의 배부른 소리라며 계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길거리 보도블럭같이 흔하디 흔한 인재.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얼굴이 김태희처럼 예쁜 것도 아니면서, 뭐 하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 하고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운. 한국에서는 그렇게 경쟁력 없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만 같아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바로 저 자신이었죠.

 

몇 년간 뉴욕에 지내면서 한국을 떠나온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이 곳에서 대학을

다니기 위해 온 사람들, 미국 국적의 배우자와의 결혼으로 한국을 떠나오게 된 사람들, 해외에서 원하던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된 사람들. 부모님의 이민 결정과 함께 해외로 오게 된 1.5세들.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했죠.

 

구체적인 이유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국경을 넘어서  자신의 거처를 바꾸고자 했던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것이 더 쉽게 '행복'에 도달하는 길이라 믿었던 그들은 한국을 떠나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뉴욕에 와서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을 지나치게 그리워하며 뉴욕에 대한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답답해서 한국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말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는 매일 한국 드라마를 한 편도 빠짐없이 챙겨 보면서도 미국이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지에 대해 매일같이

찬양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국을 떠나서 그들이 찾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제가 한국을 떠나 그토록 원했던 '행복'이란 것을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저는 적어도 이 곳에 살면서 몇가지 확실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뉴욕과 한국 두 곳 모두에 살아본

어느 누구도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지옥철에서는 사람들에게 치이지만 뉴욕

지하철에서는 햄스터보다 10배는 큰 뉴욕 쥐에게 치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집에서 바퀴나 쥐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한국을 떠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었죠.

 

둘째.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오며 몇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경력이 단절되진 않을까'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일들이 더 이상 내 자리를 비워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 '누군가 내 자리를 채워가면 더 이상 그곳에 내 자리는 남아있지 않겠지' 그 당시 제 걱정은 전부 '일'과 관련된 것이었죠.

하지만 한국을 떠나 살면서 제가 가장 슬펐던 것은 그토록 자부심을 느끼고 해내고 싶었던 일들의 부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팥빙수를 먹으며 다이어트를 망친 건 서로의 탓이라고

아웅다웅거리던 시간들.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가서 맥주 한 캔을 들이키며 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을 안주삼아 함께 보냈던 시간들. 라면 먹을 거냐는 동생의 물음에 다이어트 중이라 안 먹겠다고 말하고선 꼬들꼬들 잘 끓여진 

동생의 라면에 젓가락을 들이밀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푼수 같은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던 시간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멀리 떨어져서 보니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적어도 저는 제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떠나보는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는 떠나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떠나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이 자신에게 더 행복한 삶을 줄 수 있는

곳인지. 하지만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죠.

 

주인공이 1인칭 수다 형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일상에 지쳐 한국을 떠나보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을,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난 이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https://youtu.be/kYyxKyBDQ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