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퀘어는 내가 생각하는 뉴욕을 찾은 첫 날밤 방문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매년 12월 31일이면 한국에 살면서도
뉴스에서 빠짐없이 봐왔던 뉴이어 카운트다운 장면 때문인지 '뉴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에게 항상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 곳. 사실 뉴욕에 살면서도 매년 12월 31일에는 송구 영신 예배로 마무리해야했기 때문에 한 번도
타임스퀘어에서 뉴이어를 맞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타임스퀘어는 늘 뉴이어 카운트다운과 함께 로맨틱한 장소로
생각되는 곳이다.
뉴욕 여행 첫 날밤 동생을 데려올 장소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 곳타임스퀘어였다. JFK공항에 도착한 동생을
픽업가서 바로 플러싱으로 데리고 와서 굳이 방금전까지 한국에서 실컷 먹었을 김치찌게와 돈까스 그리고 순대 볶음을
먹인 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오르고 바로 타임스퀘어로 왔다.
앞으로 펼쳐질 한 달간의 뉴욕 여행을 가슴 벅차게 받아들이기에 이 곳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먹고 싶은 한식을 잔뜩 먹여놨으니 이제 진짜 '뉴욕'을 좀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내 일상은 한국에서와의 일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뉴욕으로 여행을 온 동생이
'여기가 뉴욕이구나'하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뉴욕 여행에 한껏 신이 난 동생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자니 이제는 무딜 대로 무뎌진 내가 처음 뉴욕에 여행을 왔을
때의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4년 전 여름. 나도 딱 이 곳에서 동생처럼 저렇게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처음 뉴욕 여행 당시 정말 무작정 뉴욕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그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곳에 살면서 내가 그동안 뉴욕을 향해 퍼부은 욕만으로도 이 곳 타임스퀘어를 다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왜 하필 맥도널드였는지는 몰라도 (아마 도처에 깔린게 맥도날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맥도날드 알바여도 좋으니 이 곳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한 그때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언제나
뉴욕에 대한 불평불만만 쏟아내며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는 것을 동생의 설레는 얼굴이 상기시켜주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포르노와 스트립쇼 공연이 즐비한 우범지대였던 이곳 타임스퀘어는 현재 낮이건 밤이건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하다. 이렇게 즐비한 인파속 사람들을 분류해내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대개 연실 웃고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 또는 관광객들의 주머니에서 1불이라도 더 끄집어내기 위해 갖가지 코스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인상을 팍 쓴 채 빛의 속도로 걸어 다니며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은 현지인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미드나 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라 처음 이 곳에 온 사람이더라도 낯설지만은 않을 이 곳
타임스퀘어는 사실 특정 빌딩이나 광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7th Ave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부터 47th
스트릿까지의 삼각형 모양 지역 전체를 말한다.
뉴욕으로 처음 여행왔을 때 구글맵으로 타임스퀘어를 검색해 도착한 이 곳에서 나는 '이 많은 빌딩 중 대체 어떤게
타임스퀘어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도 그 때 나는 뉴욕 타임스퀘어를 영등포 타임스퀘어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어디가 타임스퀘어인지 당췌 알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구글지도를 다시 검색하기를
반복했던 때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정면 광고판에 코카콜라와 함께 몇 년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광판 속 삼성을 보면
괜스레 자랑스럽다가도 나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싶기도 하고 뉴욕을 사랑했다 싫어했다를 반복하는 마음만큼이나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언제라도 Disney샵에 가서 미키마우스나 울라프와 인사를 하는 일은 4년 전 그때처럼 변함없이 즐겁다.
이 나이에도 디즈니샵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영원히 철들고 싶어하지 않는 내 마음속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뉴욕에 살면 가장 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인 타임스퀘어서의 뉴 이어 카운트다운. 그리고 그곳에서의 kiss&fall in love.
1908년 12월 31일 뉴욕 타임즈 신사옥 완공 기념 파티에서 유래된 이 이벤트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기도 하지 않을까?
운명같은 상대와의 한 해가 시작되는 순간에 나누는 달콤한 키스. 그리고 시작되는 영화같은 사랑.
하지만 이 곳에서의 삶은 여행자였던 내가 꿈꿨던 키스는커녕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낮부터 그렇게 긴 줄을
서서 기다릴 에너지와 열정마저도 고갈시켜버렸다.
그러나 그건 오롯이 '뉴욕'의 탓만은 아니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갖가지 감정들이
있기때문에 사람들은 늘 큰 돈을 지불하고 고생을 할게 뻔하더라도 '여행'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니까.
'뉴욕'이 더이상 '여행'이나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아닌 나에게 어쩌면 그건 당연한 감정의 변화였을것이다.
'여행'이란 나에게 늘 현실에서의 나보다 나를 더 로맨틱하고 용감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여행'을 '독서'와 더불어 내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공포로 뒤덮은 2020년 3월. 마음만 먹으면 전철 한 번 갈아타지 않고도
어려움없이 갈 수 있었던 타임스퀘어조차 맘놓고 갈 수 없게 되자 막상 또 이 곳이 사뭇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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