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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뉴욕

뉴욕 소호 <스티브 마덴>에서 뉴요커처럼 신발 쇼핑하기!!!

뉴욕 소호 <스티브 마덴>에서 뉴요커처럼 신발 쇼핑하기!!!

 

뉴욕 소호 스티브마덴

뉴욕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뉴욕에서 가장 궁금했던 곳 중 한 곳은 바로 이 곳 쇼핑의 거리 소호였다. 홈쇼핑이나

잡지에서 뉴욕이라는 단어와 늘 붙어 다니곤 하는 패션의 거리라 불리는 이 소호가 어찌나 궁금하던지...

나는 자유의 여신상, 타임 스퀘어 센트럴 파크,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을 둘러본 후 바로 이 곳 소호를 방문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블루밍데일스 백화점도 한국에는 매장이 없는 브랜드들도 모두 나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뉴욕 소호 스티브마덴

한국에서부터 <스티브 마덴>이라는 브랜드를 알고는 있었지만 뉴욕에 와서야 나는 처음으로 <스티브 마덴> 매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욕이라는 단어와 함께 소호 그리고 <스티브 마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던 탓일까?

내 느낌에 이 곳은 한국에서라면 지하상가에 있을 법한 신발 매장같은 딱 그 정도 느낌의 샵이었다.

 

뉴욕 소호 스티브마덴

브랜드치고는 신발 금액도 꽤 저렴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신발은 $80~$150 정도로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로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게다가 방문할 때마다 세일을 하고 있어서 훨씬 더 저렴한 신발들도 많이 있었다.

 

뉴욕 소호 스티브마덴

한국 지하상가의 신발 매장과 비교해서 좋은 점이라면 직원들이 다가와서 푸시를 하기는커녕 내가 먼저 질문을 하지

않는 한 '뭐 도와줄까'라고 형식적인 질문 한 번을 할까 말까였다.

 

신발 퀄리티가 상당히 좋지는 않지만 신발을 좋아하고 유행하는 디자인들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뉴욕 여행에서 이 곳 소호에 위치한 <스티브 마덴>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뉴욕에 <스티브 마덴>은 몇 군데 더 있지만 이 곳 소호에는 특히 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세일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소호에 방문할 때 들러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뉴욕 소호 스티브마덴

 

사실 소호의 거리를 수도 없이 걸으며 그 때 마다 스티브마덴에 들러 구경을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내가 이 곳 

스티븐 마덴에서 보았던 가장 예쁜 존재는 신발이 아니라 금발의 이 어린 소녀였다.

고사리 손으로 아빠의 운동화끈을 묶어주고 있는 예쁜 여자 아이.

아빠의 신발을 신겨주는 것도 모자라 아이는 아빠를 졸졸 쫒아다니며 이 신발 저 신발을 신어보는 아빠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이렇게 행복해 질 정도였는데 아이의 아빠는

이 날 얼마나 행복한 하루를 보냈을까?

아이들은 부모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을 알게 해주는 존재.

세상에서 나를 따르고 전적으로 믿어주며 내게 멋지다고 말해주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특히나 아빠에게 딸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이와 아빠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한국에 계신 아빠가 문득 그리워졌다.

어린 시절 나를 안고 버스를 타면 서있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어린 딸 때문에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그렇게 몇 십분을 걸려 버스를 타야 해도 딸이 너무 예뻐서 어딜 가든 딸아이를 꼭 데리고 다녔던 아빠.

딸아이에게 매미를 잡아주고 싶어 나무에 올라간 아빠가 장난기가 발동해 딸아이에게 아빠 무서워서 아래로

못 내려가겠다고 하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우리 아빠 좀 도와달라고 하던 어린 딸.

'품 안의 자식'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다 커버려 아빠와 엄마가 있는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서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떠난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빠는 눈물이 많은 분이다. 생일 날이면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늘 아빠는 내 방 한 켠에

눈물로 쓴 편지를 놓고 출근하곤 하셨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종이에 한자한자 눌러담은 아빠의 편지. 내가 뉴욕에 

온 이후로 더이상 아빠의 편지를 받아볼 순 없었다. 생일이면 늘 카카오톡으로 통화를 하곤했지만 예전처럼 내 방 

어딘가에 놓인 아빠의 편지는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온 뉴욕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며 락다운된 도시에서 통제를 당하고 '자유'라는 단어와 반대의

삶을 살게 되다니... 현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자유를 위해 찾아온 도시에서 통제를 당하다니... 인생이란 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좀 더 행복하기 위해 찾은 도시에서 인생 최고의 불안감을 맛보게 되었다. '죽음'과 '가족'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코로나19 사태는 가장 깊은 생각까지를 해보게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진짜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되자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에 도달했다.

그렇다. 나에게 '자유'란 나에게 '행복'이란 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기에 뉴욕에서의 삶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부족함이 느껴지는 시간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고 기쁜 일이 있어도 가까이에서 함께 즐길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늘 행복을 부족하게 느끼게 만든 것이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고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사람들을 끊임없이 질투하며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는 삶이 싫어서 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떠나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은

그것들과 멀어져 본 후에 어쩌면 그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