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란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될 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번도 들어보지조차 못 한 이야기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내 경우는 처음 뉴욕에 살게 되었던 약 4년 전 뉴욕 경찰 NYPD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미국 시민권자 몇 명과 도로법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한국에서 면허를 따긴 했지만 면허를 취득한 후 한 번도 도로 주행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사실 운전면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운전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짜장면 한 그릇 사 먹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인 이 도시에서 차를 사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대화에 깊이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카드에 관한 얘기가 시작되며 그 이야기는 뉴욕 생활 중 내게 손에 꼽을 정도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요는 이랬다. 뉴욕 경찰은 경찰의 계급에 따라 가족이나 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카드 몇 장을 발급받게 되는데 (대개는 가족에게 주는 용이지만 직계 가족이 몇 명 되지 않거나 직계 가족이 이 카드가 필요 없을 경우 타인에게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 카드가 있으면 도로 교통법을 위반했을 때 딱지를 떼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얘기라 몇 번이나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를 되물었고 나중에는 뉴욕 물정에 어수룩한 나를 그들이 재미 삼아 놀리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도로 교통법을 어겨도 경찰 지인라는 이유로 티켓을 받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봐도 나의 사고 회로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몇 명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내게 보여주었고 실제 이 카드로 음주 운전까지 봐줬던 사례에 대해 듣고 나니 이 '마법의 카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다.
카드의 가운데 부분에는 저마다의 네자릿수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고 전면에 크게 쓰인 숫자는 카드가 유효한 해당 연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카드의 아래쪽과 뒷면에는 이 카드를 발급받은 해당 뉴욕 경찰 NYPD의 이름과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나처럼 듣고도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아는 뉴욕 경찰에게 운 좋게 이 카드를 받게 되었다면 신호위반등의 교통 법규를 어겨 나에게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보여달라는 경찰에게 이 카드를 제시하면 벌점을 받거나 딱지를 떼는 일 없이 경찰은 이 카드를 압수해 가고 상황은 종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에는 음주 운전처럼 심한 사례도 넘어가 주기도 했다지만 요즘은 대개 가벼운 위반 사항만을 눈감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의 경찰관의 직책에 따라 어느 사안까지 넘어가 줄지 또 넘어가 주지 않을지는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 카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어도 뉴욕에 사는 동안 뉴욕 경찰 NYPD의 힘이 얼마나 센지는 누가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아마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거나 미국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뉴욕 경찰이 사람들을 제압할 때 그 강도가 얼마나 센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라도 반항을 하거나 항의를 하면 폭력으로 제압하는 영상이 이미 인터넷에 다수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갖고 있는 이 크나큰 권력이 '좋다' '나쁘다' 둘 중 하나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시위의 불을 지폈던 백인 경찰에 과도한 제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건을 예로 들자면 당연히 그들에게 주어진 공권력의 힘이 너무 과하다 못해 그들은 일반 시민들의 목숨을 경시한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뉴욕에서 사는 동안 뉴욕 경찰 NYPD라는 존재의 강력한 힘은 나 같은 이방인마저도 이 도시에서라면 안전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기도 했다.
한 번은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 보기로 한 영화 시간이 남아 밥을 먹다가 타임 스퀘어 근처에서 밥을 먹다가 다퉜던 일이 있었다. 기분이 상한 나는 영화를 보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겠다며 골을 냈고 미국인이었지만 검은 머리에 한국어 대화가 능통했던 12살까지는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한국식 마인드의 그는 지하철역까지 따라와 내 팔을 붙잡으며 나를 말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그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연인들간의 소소한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상황이 전개됐다.
그의 팔을 뿌리치는 것이 서너 번쯤 반복되었을 때 뉴욕 경찰 NYPD 2명이 그가 내 팔을 잡는 것을 막아서며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다. 당황한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순간 '한국에서도 평생 안 가본 경찰서에 뉴욕에서 가게 되는 건가'하는 엉뚱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쯤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지금 이 남자가 하는 말이 다 사실이 맞는지 그리고 우리가 너를 정말 너를 도울 필요가 없는 건지를 묻는 것이었다. 영어도 서툴고 당황한 나는 여기서 어버버 거리면 경찰서로 함께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딴에는 최대한 유창하게 그의 말이 다 맞고 나는 현재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고 답했다. 사실 당시에는 엄청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를 해도 그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이런 경찰들의 강경한 태도는 많은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처사가 분명하다고 생각됐다.
뉴욕에 오기 전 한국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영등포구 대림동에 살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고 '누가 술집 여사장을 칼로 찔러 죽였다더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죽였다더라'등등 흉흉한 사건 사고 소식이 참 끊이질 않는 동네였다. 하루는 엄마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집으로 오던 저녁 빛이 환한 사거리 한복판에서 한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걷어차이고 머리를 끌리고 피를 흘리며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숨을 죽이며 그곳을 지나쳤고 곧장 5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찰서로 가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우리의 얘기가 다 끝나도 전혀 출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언제 출동하는지를 물었다. 당시 지구대에 있던 경찰관은 지금은 혼자 있어서 현장에 나갈 수는 없고 다른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으니 당연한 절차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길에 누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던 그 여자의 상해가 얼마나 심해질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경찰관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모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대림동에서 흉기를 이용한 사건사고가 워낙 많아 경찰관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인권 타령을 하며 조금만 힘으로 제압해도 되려 본인들을 협박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경찰 업무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그렇게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구대에 홀로 남은 그 경찰관의 넋두리를 들어주다 현장으로 출동했다는 연락을 전해 듣고 그제야 경찰서를 나왔다. 다시 사거리 쪽으로 나가 현장을 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미국에 비해 땅덩어리가 작은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과잉 진압에 대한 뉴스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반면 미국에서는 시기적으로 이렇게 예민한 때에도 과잉 진압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재차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시민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힘의 크기가 클수록 사건 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힘을 가질수록 다수 시민들은 안전감을 느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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