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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뉴욕

케이트 스페이드

뉴욕 살이 5년 차 케이트 스페이드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다.

 

뉴욕 케이트스페이드

많은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케이트 스페이드'라는 브랜드는 비슷한 레벨의 브랜드인 코치나 마이클 코어스처럼 한국에서 잘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종종 홈쇼핑에서 뉴욕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설명하며 판매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한국 홈쇼핑에서 몇 번 소개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게 전부였다. 뉴욕에 지낸 첫 해 그리고 두 번째 해 까지도 사실 나는 '케이트 스페이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케이트 스페이드와 같은 브랜드는 있지도 않은 프리미엄 명품샵인 맨하셋에 가는 것이 더 즐거웠고 우드버리 아웃렛에 갈 때면 하루 종일 밥을 안 먹고 쇼핑을 해도 케이트 스페이드 브랜드는 둘러 볼 세도 없도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뉴욕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케이트 스페이드'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 중저가 브랜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되어있었다. 뉴욕에서 오랜 시간 캐셔 일을 하며 사람들의 지갑을 볼 일이 많았던 나는 뉴요커들이 이 브랜드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학생 친구들부터 40대 50대까지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뉴요커들이 이용하는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 계산일을 하다 손님 지갑의 색이나 디자인이 예뻐서 한 번 더 보게 될 때 이 브랜드의 지갑이 유독 많았던 것이 처음 내가 이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였던 것 같다.

 

현재는 우드버리 아울렛에서 구매한 입생 로랑 지갑은 동생에게 주고 나는 케이트 스페이드의 카드 지갑을 쓰고 있고 몇몇 해전 큰 맘먹고 구매한 만다리나덕의 백팩도 뒤로 한 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케이트 스페이드의 백팩과 함께 보내고 있다. 이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착한 가격대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색감과 독특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이 브랜드는 실용성을 중요시하면서도 트렌디함을 놓치기 싫어하는 뉴요커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ate spade의 역사

kate spade new york은 패션 잡지 <바자>의 에디터였던 케이트 스페이드가 1993년 1월 그녀의 남편인 Andy spade와 함께 설립한 미국의 고급 패션 디자인 하우스이다. 남성 라인으로 잭 스페이드 브랜드도 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1962년 12월 24일생인 케이트 스페이드는 미국 미주리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아리조나 주립 대학에서 졸업했다.

결혼 전 '캐서린 노엘 브로스나한'이라 불렸던 그녀는 대학 동창이었던 남편 앤디 스페이드를 만나 1983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던 그녀는 1996년 그녀의 성인 스페이드 문양을 트레이드 마크로 한 케이트 스페이드를 뉴욕에 론칭하고 그 후 전 세계에 약 300여 개의 매장을 오픈하게 된다.

부부는 2007년 자신들이 만든 이 브랜드를 매각했으며 이후 그들의 딸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 '프린세스 발렌틴'이라는 디자인 벤처 기업을 설립한다.

케이트는 오랜 시간 조우울증을 겪으면서도 늘 행복하고 즐거워 보여야 는 브랜드의 슬로건인 Happy Go Lucky에 손상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치료를 거부해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해 온 그녀는 2018년 6월 5일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돼 많은 이들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항간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남편의 외도로 인한 이혼 요구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앤디 스페이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들 부부는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지내고 있었고 케이트는 6년 전부터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으며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연락했고 그 날 자신은 딸을 돌보고 있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르웬 스콧, 알렉산더 맥퀸에 이어 케이트 스페이드까지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소식은 그들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나 역시 케이트 스페이드 브랜드를 사랑하던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죽음을 기사로 접했을 때 꽤나 충격이었다. 늘 사랑스러움과 행운을 전해줄 것만 같은 분위기의 브랜드였기에 케이트 스페이드 브랜드를 아끼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뉴욕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케이트 스페이드의 매장들을 볼 때면 좀 더 깔끔하고 모던하고 심플한 가방이 없을 지를 늘 고민한다던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그녀의 이런 패션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고민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에도 좋은 퀄리티의 가방과 지갑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감사과 존경을 표하게 되기도 한다.

 

많은 여성들이 샤넬을 좋아하고 루이비통과 구찌 프라다를 좋아하지만 그들 중 왜 그 브래드를 좋아하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내게는 왠지 슬프다. '그냥 명품이니까.', '남들도 다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라는 답을 들을 때면 더더욱 그렇다. 내 경우에는 대개 그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의 혼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샤넬을 좋아하고 샤넬 백을 구입해서 들고 다니는 이유는 당시 패션이 여성들에게 주는 불편함을 해결해주고자 했던 그녀의 마인드와 열정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녀가 남긴 많은 명언들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케이트 스페이드. 그녀는 비록 길지 않은 인생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은채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났지만 패션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사랑만은 여전히 그녀가 만든 브랜드 속에 살아 숨 쉬며 여러 세대가 지나도 케이트 스페이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